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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이들은 늘 환영을 받습니다. 런던에 기반을 둔 웨일즈 보너도 그런 브랜드 중 하나인데요. 스스로를 '아프리카'를 뜻하는 아프로(Afro)와 '육상','탄탄함'을 뜻하는 애틀래틱(Athletic)을 합친 아프로 애틀래틱 정신을 지향한다고 설명하죠. 다양성을 존중한다지만, 백인 중심에 주류 문화를 존중하던 패션계에 아프리카 문화에 기반을 둔 웨일즈 보너의 컬렉션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웨일즈 보너는 자메이카계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Grace Wales Bonner)가 창립한 브랜드입니다. 어릴 적, 사람들이 그녀를 흑인이라 불렀지만, 흑인들은 그녀를 백인이라 말했던 경험은 독특한 인종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일조했죠.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예술과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된 웨일즈 보너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진학해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게 됩니다. 역사 연구를 하며 자신의 사고 과정을 패션으로 표현하는데 관심을 가진 그녀는 의상 디자인이 자신과 잘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화려한 수상경력
2014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며 선보인 컬렉션이 로레알 프로페셔널 탤런트 어워드(L'Oréal Professionnel Talent Award)를 수상하면서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는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아프리크(Afrique)'를 주제로 흑인 모델들을 전면에 세운 이 컬렉션은 아프리카 문화와 수공예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전개되었죠.
광범위한 문화에 대한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의 독특한 관점은 곧 패션문화계의 주류로 떠올랐습니다. 2015년 영국 패션 어워즈(British Fashion Awards)에서 신진 남성복 디자이너(Emerging Menswear Designer) 상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LVMH 프라이즈(LVMH Prize)에서 우승했죠. 알릭스(Alyx)의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Matthew Williams) 와이프로젝트(Y/Project)의 글렌 마틴스(Glenn Martens)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수상한 그녀는 LVMH 프라이즈의 첫 번째 여성 솔로 우승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2019년 영국 패션 협회/보그 디자이너 패션 펀드(British Fashion Council/Vogue Designer Fashion Fund) 우승, 2021년 CFDA 국제 남성 디자이너 상(the CFDA International Men's Designer of the Year) 수상, 2022년에는 대영제국훈장(MBE, Memb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습니다.
아디다스와의 협업
하지만 무엇보다 웨일즈 보너의 인지도를 높인 것은 아디다스와의 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웨일즈 보너는 1970년대 영국에서 유행했던 레게 음악의 일종인 '러버스 락(Lovers Rock)’에서 영감을 받아 2020년 F/W 컬렉션을 전개했는데요. 1970년대 운동화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아디다스가 바로 협업을 제안했고, 협업 라인이 출시되었던 것이죠.
투박한 어글리 스니커즈가 유행하던 그 당시, 협업 라인의 '삼바' 스니커즈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킵니다. 기존의 삼바 스니커즈 고유한 삼선 장식에 색다른 소재와 스티치를 접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를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받았어요. 뿐만 아니라, 납작하고 매끈한 라인으로 스니커즈의 트렌드를 바꾸게 됩니다.
웨일즈 보너와 아디다스의 협업은 서로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긍정적인 협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웨일즈 보너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힘으로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아디다스는 감도 높은 신진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주춤하던 삼바 스니커즈를 최정상으로 올렸기 때문이죠. 덕분에 이 둘의 협업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사색가이자 작가이며 편집자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의 시선은 패션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각기 다른 예술 분야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있어 사색가이자 작가, 편집자로도 인정받고 있죠. 이는 2019년 큐레이터로 데뷔한 전시 '새로운 꿈을 위한 시간(A Time for New Dreams)'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 주최된 전시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인 벤 오크리(Ben Okri)의 에세이 모음에서 이름을 차용했어요. '흑인 문화와 미적 관행 내의 마법적 공명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한 예술 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였죠. 마지막에는 웨일즈 보너의 2019년 F/W 컬렉션인 '멈보 점보(Mumbo Jumbo)'를 발표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로도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는 각종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책까지 출간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아티스트로 거듭났습니다. 예술가들과의 지속적인 협업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했죠. 디올의 수장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는 그녀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 2020년 리조트 컬렉션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의 여정은, 그녀의 신선한 시각과 깊은 고민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유구한 아프리카 문화와 유색인종 아티스트들이 지금만큼 조명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패션을 넘어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갈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의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